디자이너 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모습이 떠오르세요?
막연히 화려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까탈스러운 모습이 떠오르나요?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요즘, 세계는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산업시대에 접어들며 문자 그대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습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fig1. 2024, 「넷플릭스, 지금 구매하세요 : 쇼핑의 음모」
너무나 다양한 물건이 발에 채이는데 이것들은 다 쓰이지 못하고 결국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심지어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사라져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대중의 소비를 자극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보다는 그때그때 달라지는 유행에 맞추어 소비자의 혼을 쏙 빼놓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능력으로 치부되는 21세기입니다.
저는 이것이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르다는 것은 늘 달라지기 마련입니다만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장의 욕망 충족을 위해 미래 후손들의 행복을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사회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우리의 작업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대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university는 라틴어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에서 왔습니다. '전체', '공동체'를 뜻하는 말로, 중세에는 일종의 조합(길드)을 가리키는 법률 용어였습니다. 11세기 말 이탈리아 볼로냐와 12세기 파리에서 최초의 대학들이 태어났습니다.

fig2. 볼로냐 대학교, Wikipedia
볼로냐에서는 학생들이 조합을 이루어 교수를 초빙했고, 파리의 대학은 '교사와 학생의 공동체(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라 불렸습니다. 건물도, 캠퍼스도 아닌,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모임 그 자체가 대학이었던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지식을 보존하고 전수하는 일,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일. 19세기 초 훔볼트가 베를린대학을 세우며 '연구와 교육의 통일'을 내세운 이후, 지식의 생산은 대학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대학이 생산하는 지식은 사유재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학은 등록금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국가의 재정, 즉 세금이 들어가고, 앞선 세대가 쌓아올린 지적 유산이 제공됩니다. 도서관의 책 한 권, 실험실의 장비 하나에도 사회 전체의 투자가 스며 있습니다. 그러니 대학에서 만들어진 지식은 본질적으로 공공재입니다. 그리고 공공의 자원으로 길러진 사람에게는, 그 결실을 다시 공공에 돌려줄 책임이 따릅니다. 그리고 많은 디자이너들이 대학을 나왔습니다.
디자이너는 무엇에 책임을 져야 할까요. 우리의 작업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까요.
빅터 파파넥은 1971년 『인간을 위한 디자인』의 첫 문장에서 산업디자인보다 해로운 직업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래 전의 독설이지만, 팔리기 위해 태어나 버려지기 위해 소비되는 물건들이 넘쳐나는 지금, 이 말은 오히려 더 아프게 들립니다. 디자이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사물을 존재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 사물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자원을 쓰고, 버려진 후에도 오래도록 지구 어딘가에 남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겠죠. 오래 쓰일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 유행이 아니라 쓸모를 따지는 것.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것 앞에서 만들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지 않을겁니다.